[CASE STUDY] (1) ‘가전업계의 애플’ 다이슨 | 기능 집중·초격차 기술·혁신 인재 ‘3박자’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날개 없는 청소기…
독창적 디자인으로 세계를 홀리다

  • 노승욱
  • 입력 : 2017.01.02 09:24:32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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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부터 글로벌 기업들의 성공 비결을 분석한 ‘CASE STUDYʼ 연재를 시작합니다. 해당 기업의 오늘을 있게 한 핵심 역량과 전략을 톺아보고 우리 기업이 벤치마킹할 만한 시사점을 도출하려는 취지입니다.

‘비틀즈 이후 가장 성공적인 영국 제품’ ‘올해(2009년)에 가장 혁신적인 발명품’ ‘영국의 스티브 잡스 (또는 영국의 애플).’

글로벌 프리미엄 가전기업 ‘다이슨’과 그 창업주인 제임스 다이슨이 받은 찬사들이다. 날개 없는 선풍기,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 등 기발하고 참신한 가전은 그 자체로 뉴스가 됐다.
다이슨은 어떻게 디자인과 성능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을까.

▶기능에 집중하면 디자인 따라온다

▷산업디자이너 0명, 엔지니어만 뽑아

다이슨이 사람들로부터 흔히 받는 오해가 있다. 다이슨의 가장 큰 성공 비결이 ‘독특한 디자인’ 때문이란 오해다. 혁신적인 외관도 그렇지만, 제임스 다이슨이 스티브 잡스와 비견되면서 이런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스티브 잡스가 누군가. ‘디자인은 인간 창조물의 영혼(Design is the fundamental soul of a human made creation)’ ‘디자인은 어떻게 기능하느냐의 문제(Design is how it works)’라 했을 만큼 ‘디자인 경영의 화신’ 아니던가.

그러나 다이슨은 디자인과 기능을 결코 동일 선상에 놓지 않는다. 오히려 ‘디자인은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게 다이슨의 디자인 철학이다. 즉 독창적인 기능을 먼저 생각하다 보면 제품 외관도 ‘자연스럽게’ 독창적으로 형성된다는 게 제임스 다이슨과 다이슨 엔지니어들의 생각이다.

다이슨의 첫 히트작인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부터 그랬다. 제임스 다이슨은 1978년 실내 도장실에서 에어필터가 도료에 의해 막히는 것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마침 집에 있던 진공청소기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었다. 먼지봉투 구멍이 먼지에 막혀 흡입력이 약해지곤 한 것. ‘어떻게 하면 먼지봉투를 없앨 수 있을까’ 고민한 다이슨은 공기 중에서 먼지 알갱이만 분리해내는 기술 개발에 몰두한다. 수만 번의 시행착오와 수천 개의 시제품을 만든 끝에 그가 발명한 게 ‘사이클론 테크놀로지’다. 강력한 원심력으로 인간이 일상에서 받는 중력(1G)보다 무려 29만3000배나 높은 중력을 청소기 내에 발생시켜 1g짜리 먼지 알갱이에 293㎏의 무게를 부여하는 기술이다. 덕분에 먼지나 미세입자는 공기에서 쉽게 걸러져 투명 먼지통에 자동으로 빨려들어갔고, 자연스럽게 먼지봉투도 필요 없게 됐다. 즉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는 ‘보기 좋은’ 청소기가 아니라, 흡입력이 약해지지 않는 청소기를 개발하다가 우연찮게 ‘얻어 걸린’ 셈이다. 카펫 같은 장애물도 부드럽게 지나가는 ‘볼 청소기’, 아이들의 안전과 청소 편의성이 높은 ‘날개 없는 선풍기’도 모두 기능에 충실한 디자인이다.

디자인보다 기능을 우선하는 경영철학은 직원들의 구성을 봐도 알 수 있다. 다이슨의 전체 직원 7000여명 중 연구개발(R&D) 부서 직원은 2000여명에 달한다. 그런데 이 중 디자인을 전공한 산업 디자이너는 단 한 명도 없다. R&D 부서 직원은 모두 과학과 기술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이다.

다이슨 관계자는 “일부 엔지니어가 디자인 교육을 받기도 하지만, 다이슨에서 디자인은 일부일 뿐이다. 우리는 제품이 어떻게 보일지 구상한 뒤에 제품을 개발하지 않는다. 일상의 불편함을 살펴 소비자들의 욕구를 세심하게 짚어낸 뒤, 무엇이 디자인이고 무엇이 기술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통합된 제품 설계를 통해 군더더기 없이 핵심 기능만을 강조한 기능미를 제시한다”고 강조했다.

▶압도적인 핵심(core) 기술이 있다

▷이익 42% 기술 개발에 재투자

개선된 기능이 독창적인 디자인을 낳았다면, 기능 개선을 가능케 한 건 독보적인 기술력이다.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를 만든 사이클론 기술은 시작에 불과했다. 생활가전은 작고 가벼워야 하는데 기존의 모터는 무겁고 전력 소모가 크며, 시간이 지날수록 마모됐다. 원하는 모터를 시장에서 찾을 수 없었던 다이슨은 급기야 1999년 모터를 직접 개발하기로 결심한다. 당연히 쉽지 않았다. 다이슨의 첫 번째 모터 시제품은 단 15초만 작동하는 대(大)실패작이었다. 포기하지 않았다. 심기일전하고 연구를 계속해나간 다이슨은 분당 최대 11만번 회전하는 작고 가벼우면서도 강력한 성능을 가진 다이슨 디지털 모터(DDM) V8을 생산하는 데 성공한다. 안주하지 않았다. 최근 에는 V8보다 3분의 1 더 작고 무게도 절반에 불과하지만 속도는 8배 더 빠른 모터 ‘DDM V9’을 개발했다.

다이슨 쿨 선풍기(날개 없는 선풍기)에 탑재된 에어 멀티플라이어(Air Multiplier)도 다이슨의 효자 기술이다. 이 기술은 몸체 아래쪽에 모터로 작동하는 공기압축기가 공기를 흡입해, 위쪽의 좁은 틈새로 분사한다. 이때 공기는 가속도를 얻어 배출되면서 강력한 제트기류를 형성하고 주변 공기를 끌어모아 바람의 양을 15~18배가량 증폭시켜 더욱 시원한 바람을 내보낸다. DDM V9과 에어 멀티플라이어, 그리고 사이클론 기술은 청소기, 선풍기, 헤어드라이어, 공기청정 냉온풍기 등 다이슨의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기술적으로 지원한 근간이 됐다.

이 같은 기술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R&D 투자에 기인한다. 다이슨은 2013~2015년 3년간 연평균 3억8300만파운드(약 5670억원)의 수익(EBITDA, 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을 냈다. 같은 기간 다이슨이 R&D에 투자한 평균 총비용은 1억6100만파운드(약 2380억원)에 달한다. EBITDA의 무려 42%를 R&D에 쏟아부은 것이다. 제조업계에선 이 비율이 10%만 넘어도 기술지향적인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기술을 지향하는 수준을 넘어서 ‘기술=다이슨의 DNA’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연구자들에게 기술 개발 기간도 충분히 제공한다. 일반적인 가전업체는 에어컨, 식기세척기 등 상대적으로 비주력 가전제품을 개발하는 R&D팀은 10명 미만의 연구진이 길어도 6개월~1년에 한 번씩 신제품을 내놔야 한다. 신제품이 혁신은커녕, 일부 기능 개선에 그치는 이유다.

반면 다이슨은 헤어드라이어에만 수백 명의 연구진이 투입돼 2~3년씩 개발한다. 웬만한 신차(新車) 개발 기간보다도 길다. 여기에는 창업주인 제임스 다이슨부터 기술 경영을 실천하는 ‘솔선수범’이 숨어 있다.

그는 5년간 5127개의 시제품을 제작한 끝에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를 만들어냈다. 하루 평균 2.8개의 시제품을 만든 셈이다. 지금도 그는 다이슨의 최고경영자(CEO)가 아니다. 최고기술자(Chief Engineer)로서 여전히 연구실에서 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차별화된 기술 덕분에 다이슨 실적은 고공행진하고 있다. 2015년 매출은 전년 대비 26% 성장한 17억4000만파운드(약 2조5750억원), 수익은 전년 대비 19% 성장한 4억4800만파운드(약 6630억원)를 기록했다. 글로벌 제품 판매량도 2013년 700만대에서 2015년 1000만대로 2년 만에 43%나 증가했다.

▶혁신에 최적화된 인사관리

▷직원 평균 연령 26세…창의적 사고 중시

R&D에 아무리 투자해도 인재가 없다면 회사는 헛돈을 쓰는 셈이다. 다이슨이 기술과 디자인에서 보여준 혁신도 따지고 보면 혁신적인 인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이슨의 인사관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엔지니어들의 ‘젊은 나이’다. 평균 연령이 26세에 불과하다(2015년 기준). 야후재팬(평균 연령 35세), 텐센트(29세)보다 젊고, 페이스북(26세)과 같은 수준이다. 인터넷 기업도 아닌, 제조기업으로서는 파격적으로 낮은 편이다.

비결은 ‘짧은 가방끈’이다. 다이슨은 석사나 박사 대신 갓 졸업한 대학생을 대거 채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른 기업을 다니다 경력직으로 옮기는 것도 환영하지 않는다. 이론적 지식으로 무장한 채 다이슨에 입사하기보다는, 기본적인 전공 지식만 갖추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직접 일을 하며 ‘경험 지식’을 쌓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는 지난 20세기에 전 세계 대학과 기업들이 지식 위주의 주입식 교육에 몰두한 것과 대비된다. 20세기는 분명 괄목할 만한 과학적 진보를 이뤘고, 인류의 지적 자산도 엄청나게 축적됐다. 덕분에 우주, 국방 같은 고도 산업이 발달할 수 있었지만, 일반 제조업에선 이론을 배우느라 현장에서만 익힐 수 있는 경험 지식을 쌓을 기회가 감소했다. 특히 21세기에는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전문지식이나 정보에 대한 접근이 쉬워졌다. 또 지식이 많거나 전문 분야가 생기면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에 갇혀 시야가 좁아질 수도 있다.

제임스 다이슨이 “기술 투자 확장과 평균 26세인 다이슨 엔지니어의 젊고 밝은 정신이 기존의 틀을 깨는 제품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강조한 배경이다.

가방끈이 짧아 지식이 부족하다면 채우면 된다. 다이슨은 차세대 엔지니어 양성을 위해 2015년 10월 세계적 명문 대학인 임페리얼칼리지런던(ICL)에 ‘다이슨 디자인 엔지니어링 스쿨(The Dyson School of Design Engineering)’을 설립했다. 4년제 디자인 공학석사 과정이고 다이슨 엔지니어들이 커리큘럼 개발에 직접 참여해 산업과의 연계성을 강화했다. 한마디로 다이슨의 사내 교육기관인 셈이다. 또 2017년에는 다이슨 기술 교육기관(Dyson Institute of Technology)을 설립, 차세대 엔지니어를 직접 육성해 2020년까지 다이슨 엔지니어링팀을 2배로 키울 계획이다. 다이슨 학교에선 기초공학 같은 기술적(이론적) 전문성은 물론, 학생들이 디자인적 사고나 문제 해결을 위한 창의성도 함께 겸비할 수 있도록 지도할 방침이다.

일부 기술 개발 업무는 적극적인 산학 협력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다이슨은 2016년부터 3년간 수십억원을 투자, 20개 대학과 협업해 40개의 제품 개발과 50개의 연구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경영 시사점

▷경험 지식 더 쌓고 HW 다시 봐야

다이슨의 성공 비결이 우리 기업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다. 기업이 가진 핵심 역량과 조직문화, 시장 내 포지셔닝, CEO의 경영철학 등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가령 수백 명의 연구진이 2~3년씩 신기술 개발에 몰두하고, EBITDA의 30% 이상을 R&D에 쏟아붓는 건 말 그대로 ‘다이슨이라서 가능하다’는 게 학계 중론이다. 다이슨은 창업주가 5년간 기술 개발에 매진해 대박을 터뜨린 ‘성취 경험’이 있고, 초프리미엄 시장에 포지셔닝해 대중 가전 또는 준프리미엄 시장에 집중하는 기업보다 R&D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감안해도 다이슨의 성공에서 우리 기업이 벤치마킹할 부분은 적지 않다.

첫째, ‘경험 지식’이 더 필요하다. 국내에선 매년 1만명 이상 박사 학위 취득자가 새로 배출된다. 학사(4년), 군 휴학(2~3년), 석사(2년), 박사(5~6년)를 거치면 30대 중반에야 비로소 현장 경험을 쌓게 된다. 직원 평균 연령이 26세인 다이슨에 비하면 현업에 10년가량 늦게 배치되는 셈이다. 이들은 최신 기술과 이론으로 무장했지만 실무 노하우는 부족하다. 가령 제임스 다이슨이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를 개발했을 때 그의 학력은 학사에 불과했다. 그저 일상에서 느낀 커다란 불편 한두 가지를 개선했을 뿐이다.

이런 불편 요소를 인지하고 개선 아이디어를 얻을 때 경험 지식은 이론 지식보다 더 유용할 때가 많다. 가령 경험이 많은 은행원은 지폐 다발을 쥐기만 해도 지폐가 몇 장인지 잘 맞춘다. 노련한 엔지니어도 노트북을 드는 순간 무게가 몇 ㎏인지 대략 감이 온다. 그뿐인가. 평소와 다른 아주 사소한 차이만으로도 제품 내부의 어디에 문제가 생겼는지 직관적으로 알아채곤 한다. 대학에서 이론 공부만 해서는 결코 가질 수 없는 노하우다. 인터넷의 발달로 최근 연구자 간 이론 지식의 편차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이럴 때 경험 지식이 5%만 달라져도 혁신의 차이가 생길 수 있다.

둘째, 꼭 필요한 기능에 집중하라. 다이슨은 자사 제품에 사물인터넷 같은 최신 기능을 추가하지 않는다. 기술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게 청소기나 선풍기, 헤어드라이어에 대해 소비자가 원하는 핵심 기능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리모콘의 수십 가지 버튼 중 실제 자주 눌리는 버튼이 몇 가지인지 세어보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소비자 니즈가 없는데도 괜히 사용설명서만 두껍게 만드는 ‘최신 기술의 과잉’은 제품 가격만 높일 뿐이다. ‘기능’에 집중하는 것과 ‘기술’에 집중하는 건 다른 얘기다.

셋째, IT 소프트웨어보다 하드웨어가 여전히 더 중요할 수 있다. 작지만 강한 모터 등 다이슨의 핵심 기술은 ‘전자’보다는 ‘기계’ 또는 ‘물리’에 가깝다. 이는 다이슨이 삼성, LG, 밀레 등 글로벌 가전 업체들을 제치고 수십 년째 세계 최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비결이다. 기계나 화학 분야는 ICT보다 기술 격차를 좁히기가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가령 디스플레이 화질이나 지문·홍채인식 등의 IT 기술은 6개월이면 중국 기업들도 금세 따라온다. 그러나 소재 경량화, 엔진 열 효율(연비) 개선, 배터리 등의 기계·화학 기술은 1위 업체 추격은커녕 자사 제품 성능 개선도 쉽지 않다.
바꿔 말하면, 한 번 우위를 점했을 때 부가가치가 훨씬 크다는 얘기다. 갤럭시노트7 발화 사태도 IT 기술이 아닌, 기계나 화학 기술의 결함에 기인한 것이었다. 방수 기능을 탑재하면서도 배터리 발열을 막아야 하는 문제가 기계나 화학 관련 기술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자칫 단순해 보이는 물리적 기술이 실상에선 훨씬 중요한 가치를 만들어낸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정연찬 서울과학기술대 디자인기술융합프로그램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89·신년호 (2017.01.01~01.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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