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스타트업, 경제 시스템을 해킹하다

<전명산의 블록체인 아고라>

  • 전명산 블록체인OS CSO
  • 입력 : 2018.01.30 15:41:03   수정 : 2018-01-30 15:5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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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법무부장관, 금융위원장, 청와대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직접 거론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새로 나온 기술 하나가 이렇게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으니 필자가 보기에도 자못 신기한 일이다.

그런데 이 정도는 시작에 불과하다.
월 사용자 1억명에 달하는 메신저 텔레그램이 자체 기술로 개발한 암호화폐를 도입해 코인 공개(ICO)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시가 총액 550조원에 달하는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책임자(CEO) 주커버크가 암호화폐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페이스북 사용자가 월 기준 20억명에 이르니 만약 독자적인 암호화폐를 도입한다면 20억명이 사용하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이 구축된다. 중국의 법정화폐 위안화를 사용하는 인구가 약 14억명이니 페이스북의 ‘검토'가 현실화된다면 지구상에서 가장 큰 화폐 경제 시스템이 탄생하는 것이다.

물론 페이스북의 ‘검토'는 빨리 실행되지 못할 것이다. 파급력이 너무나도 큰 데다가 암호화폐를 도입하려면 현 비즈니스 모델의 상당 부분을 손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암호화폐 도입을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스티밋(Steemit)처럼 화폐 시스템을 내장한 서비스가 어느날 갑자기 치고 올라와 경쟁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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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암호화폐와 그 적용 방법을 연구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페이스북 CEO 마크 주커버그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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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기존 인터넷 업체들 중 상당수가 암호화폐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에서 성공한 메신저 라인도 암호화폐 도입을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한물 간 기업으로 평가받던 코닥은 암호화폐 발행 계획을 발표한 이후 주가가 2배로 뛰었다. 필자 주변의 게임업체들도 암호화폐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이러한 소식들은 글로벌 No.1을 다투는 기라성 같은 인터넷 업체들도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 기술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이러한 흐름은 몇몇 선도적인 업체들의 실험 수준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일종의 패러다임 이동이 시작된 것이다. 벤처 생태계 게임의 룰 자체에 변화가 일고 있다.

경제 시스템 자체를 설계한다

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몇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번째로 암호화폐 시장이 1년 사이 10배 넘게 성장하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됨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는 적어도 현 시점까지는 어느 정도 현실적인 근거를 갖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 안에서 기업이 수익이 있는 곳에 뛰어든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두번째로 기존 서비스에 암호화폐를 결합했을 때 생겨나는 시너지가 어마어마함을 들 수 있다. 상당수의 인터넷, 모바일 서비스들은 자체 포인트나 디지털 머니를 갖고 있다. 특히 게임 업체들은 거의 대부분 이러한 가상화폐(Virtual Currency)를 게임 내부에 운영하고 있다. 이런 포인트나 디지털 머니는 지금도 아이템베이나 개인거래 등을 통해서 거래되고 있는데 이들이 암호화폐(Cryotocurrency)로 바뀌면 빗썸이나 업비트 같은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거래할 수 있게 된다. 즉 서비스에서 만들어진 가치가 현실 경제의 가치로 전환되는 공식적인 통로가 열리는 셈이다.

또 서비스가 성장해서 어느 정도 경제적 규모를 형성한다면 그 서비스의 암호화폐가 일종의 지불수단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페이스북이 암호화폐를 도입한다면 정확히 이와 같은 상황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자면 쇼핑몰 같은 곳에서 페이스북의 암호화폐를 주고 물건을 사는 것과 같은 일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큰 충돌이 발생한다. 민간 업체에서 만든 포인트나 디지털 머니가 지불 수단으로 사용된다면 국가가 공식 화폐로 인정한 법정화폐의 지위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비트코인과 비트코인 이후 만들어진 1000여개의 암호화폐를 극도로 단순화하면 위변조 불가능한 구조로 설계된 컴퓨터 네트워크 안에서 오고가는 소프트웨어 코드 덩어리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코드 덩어리가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길래 법정 화폐의 지위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까.

여기에 보다 근본적인 세번째 이유가 등장한다. 블록체인 및 암호경제 스타트업들이 하는 일이 그저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암호화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 그 자체를 설계하고 구현하는 프로젝트라는 점이다. 암호경제 스타트업들과 기존 스타트업들의 결정적인 차이는 이미 만들어진 경제적 게임의 룰 안에서 새로운 사업을 개척하느냐, 아니면 이미 존재하는 틀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룰을 설계, 구현, 실현하느냐에 있다.

암호화폐 스타트업들은 각자 고유의 경제 모델들을 갖고 있다. 예컨대 비트코인은 최대 발행량 자체가 2100만개로 제한된 화폐 시스템을 만들었다. 비트코인보다 가볍고 빠른 화폐 시스템을 만드려 하는 라이트코인(Litecoin) 프로젝트, 디앱(dApp, 블록체인 위에서 작동하는 프로그램 혹은 서비스들)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이더리움 프로젝트, P2P 기반의 보험이나 대출 서비스를 구축하려는 위트러스트(WeTrust), 노동 시간 기준으로 가치를 교환하는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크로노뱅크(ChronoBank), 사물인터넷 기기들 사이에서 자동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아이오타(IOTA) 등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어떤 특징을 가진 경제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업을 한다. 만약 누군가가 암호화폐 비즈니스에 대한 정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기존 경제 시스템을 해킹 - 원래의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목적으로 기존 것을 변경하는 것 - 해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만드는 비즈니스라고 답할 것이다.

이전까지는 일개 스타트업이 경제 시스템의 룰을 변경하거나 새로운 경제 법칙의 룰을 만든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스타트업의 사업 영역이 이제 경제 시스템 자체로 확장된 것이다. 그리고 이들 프로젝트들은 기존 경제 시스템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정도의 비용과 자원으로 원하는 모델을 구현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필자가 <암호경제 -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놈이 온다 -2>에서 다룬 것처럼 프로젝트들의 경제 모델이 프로그램으로 구현되는, 프로그래밍 가능한 경제(Programmable Economy)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넘어설 새로운 블록체인 프로젝트 등장할 것

비록 암호화폐 경제에는 엄청난 거품, 과장 그리고 사기가 존재하지만 기존 경제시스템의 한계를 보완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경제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못 진지한 프로젝트들도 많다. 이 중 몇 개는 자신만의 경제 시스템을 구축해 언젠가는 비트코인보다 더 큰 경제 네트워크를 만들어낼 것이다. 세상을 바꾸려는 누군가에 의해 자본주의의 단점을 극복하는 새로운 화폐 시스템, 새로운 경제 시스템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이 닷컴 버블 이후 가장 성공적인 벤처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새로운 경제 모델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기존 경제 시스템 위에 자신들만의 독보적인 사업 영역을 구축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거품과 논란을 거치면서 암호경제 프로젝트의 대표 주자에 오를 이들은 기존과는 다른 경제 시스템을 구축한 자들이 될 것이다. 어쩌면 한국에서 시작된 어떤 프로젝트가 그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른다. 혹은 암호화폐로 무장한 페이스북이 지금의 550조원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경제 시스템을 구축해 그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스타트업의 가치는 향후 얼마 만큼의 비즈니스 규모 혹은 경제 규모를 만들 것으로 평가받는지에 따라 따라 달라진다. 이같은 기준에 따라 2010년 이후 개발자 10여명 안팎의 인원이 만든 서비스가 시장에서 1조원 넘게 평가받는 경우가 등장하고 있다. 인력이 몇명 투입됐는지가 아니라 서비스 혹은 제품이 만들어낼 경제 규모가 얼마인지에 따라 평가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암호화폐 프로젝트들은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창출할 경제 규모가 현재 애플과 구글을 넘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경제 시스템 자체를 설계하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상당한 가치를 평가받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집단적 학습 통해 수용 속도 높여야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현상을 한 때의 광풍으로 본다면 빨리 진압하고 축소해 더 크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 상황을 경제 게임의 룰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스타트업들이 탄생하는 상황이라고 본다면 미래에 아주 잘못된 진단으로 판명될 것이다. 만약 필자의 진단대로 경제 게임의 룰이 바뀐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아마 빨리 경험하고, 빨리 실패하고, 빨리 학습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형태로, 그리고 이익을 최대화하는 형태로 수용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일본은 이미 지난해 비트코인을 공식적인 거래수단으로 인정했다. 혹자는 일본이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비트코인을 수용하고 활용하는 나라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이미 2014년에 세계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였던 마운트곡스의 해킹(혹은 내부자 탈취) 및 파산 사건을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 한국사회는 4년이나 지난 오늘에서야 비트코인으로부터 시작된 새로운 산업 영역을 집단 체험하고 있다. 그 4년의 시간이 한국과 일본이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를 만들어낸게 아닐까?

하지만 세계 현대사를 통틀어 한국만큼 강렬하게, 압축적으로 그리고 다방면에 걸쳐서 집단적 학습을 경험한 나라도 드물 것이다.
우리는 1987년 전국민 항쟁을 통해 민주화를 경험했고 1997년 외환위기를 통해 세계 경제의 매서운 칼바람을 집단적으로 경험했고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축제가 무엇인지를 배웠으며 2008년과 2016년 촛불 집회를 통해 비폭력 무혈혁명을 학습하고 이뤄냈다. 그리고 이제 또 다시 전국민이 암호경제와 암호화폐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의 학습 능력은 그 어느 나라보다 뒤지지 않는다. 작금의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관련 논란에서 정책 당국의 대응이 다소 헛다리를 짚는 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우리가 가진 그 집단적 학습능력에 한 표를 행사할 것이다.

[전명산 블록체인OS C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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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사회학과 대학원을 중퇴했다. 블로그 기반 미디어인 미디어몹의 기획팀장, SK 커뮤니케이션즈 R&D 연구소 팀장, 스타트업 대표 등 20년간 IT산업 영역에서 일을 했다. 현재는 블록체인 기술 전문회사 블록체인OS에서 근무 중이다. 2012년에는 원시사회부터 21세기까지의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분석한 '국가에서 마을로'를, 2017년에는 블록체인 기술의 사회적 의미를 분석한 '블록체인 거번먼트'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