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시작은 기업가 정신 함양...산학 협동 모범사례

[북유럽 4차산업혁명 거점, 핀란드 가다] ②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 김용영
  • 입력 : 2017.10.23 18:46:15   수정 :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핀란드는 북유럽에서 손꼽히는 스타트업 강국이다. 전세계에서 인구당 스타트업이 가장 많은 국가이며 인구 500만명 중 16만명이 첨단 기술과 관련한 엔지니어 직종에서 근무하고 있다. 정부 주도의 강력한 스타트업 육성 정책과 함께 산학 협력도 전세계 최고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민간에서의 스타트업 활동도 활발해 유럽 1위, 전세계 2위 규모의 스타트업 축제인 슬러시(SLUSH)가 매년 겨울 성황리에 개최된다.
슬러시는 최근 베이징, 싱가포르, 도쿄 등 아시아 지역으로도 확대 개최되고 있다.

그러나 핀란드 스타트업 산업의 기저에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정책 기조가 자리잡고 있다. 될성부른 떡잎에는 물과 비료를 줄 뿐 뿌리째 파내 화단으로 옮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타트업 육성의 시작은 바로 기업가 정신의 함양이 자리잡고 있다.

핀란드 스타트업의 요람 ‘스타트업 사우나’

스타트업 사우나는 핀란드의 알토 대학교가 만든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다. 학교 내 창고로 사용되던 건물을 개조해 스타트업들을 위한 사무실로 사용하고 이 곳을 거점으로 총 6단계로 구성된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핀란드의 주요 스타트업은 모두 이 곳을 거쳐갔다고 봐도 무방할 만큼 성공적인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사진설명알토 대학교 내에 위치한 스타트업 사우나 건물 [사진 출처 : 매경DB]
▶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6단계로 나눠진 프로그램의 첫번째 과정은 창업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이론을 전수하는 알토예스(Aaltoes)다. 핵심 코스는 바로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 함양이다. 창업 아이디어나 기술이 먼저가 아닌, 창업가에게 필요한 정신과 자세를 육성하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나 기술은 그 다음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서 창업 경험이 없는 청년들이 스타트업 설립에 필요한 노하우를 익힌다.

두번째는 48시간 진행되는 해커톤인 정션(Junction)이다. 본인이나 팀이 보유한 아이디어를 무박 이틀동안 실제로 구현해보고 상품성을 검증하는 자리이다. 이를 통해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요령과 시장에 처음 내놓았을 때의 반응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세번째는 본격적으로 숙성에 들어가는 스타트업 라이퍼스(Startup lifers)다. 창업자들마다 관리 팀이 배정돼 아이디어나 기술을 배양하는 단계를 거친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은 참가자들은 실리콘밸리로 인턴쉽을 보내 해당 분야의 앞선 기술을 배우고 분위기를 익히도록 한다.

네번째는 드디어 스타트업을 설립하는 단계인 팀업(team up)이다. 실리콘밸리 인턴십 등 해당 분야의 경험을 쌓은 사람들을 모아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서로 의견을 나누는 네트워킹 자리를 마련한다. 여기에서 창업자들은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 등 각자 필요한 인력들을 물색하고 서로의 요구에 맞춰 팀을 이룬다. 이렇게 해서 스타트업이 만들어진다.

결성된 스타트업은 프로그램의 핵심이자 다섯번째 과정인 스타트업 사우나(Startup Sauna)에 참가할 자격을 얻는다. 이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은 먼저 팀을 갖춰야 하고 데모가 있어야 하며 창업 아이디어 자체가 전세계적으로 통해야만 참가할 수 있다. 총 7주로 구성되며 일주일에 20시간 이상 세미나가 이뤄지고 다양한 투어와 워크샵을 병행한다.

마지막 여섯번째 과정이 바로 슬러시다. 앞서 다섯가지 과정을 모두 이수한 팀들은 비로소 본인의 창업 아이템을 슬러시에 발표할 자격을 얻는다. 여기에서 핀란드를 포함한 전세계 벤처캐피탈(VC), 투자자들 앞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투자를 받을 기회를 얻는다.

카롤리아 밀러 스타트업 사우나 CEO는 “스타트업 사우나의 모든 과정은 정부나 투자사 없이 학생들의 주도로 이뤄진다”며 “이를 통해 포스트 노키아를 설립할 수 있는 힘을 키웠다”고 밝혔다.

기술 창업은 산학 협력부터

스타트업 사우나의 놀라운 점은 이같은 일련의 과정이 모두 학생들의 손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스타트업 사우나 자체가 학교에 근간을 둔 비영리단체(NGO)다. 프로그램 초기 기존 스타트업이나 투자사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특별한 도움이 필요없을 정도로 체계가 확립됐다는 설명이다. 스타트업 사우나의 현 대표인 카롤리아 밀러도 학생이며 슬러시 CEO인 마리안 비쿨라도 마찬가지다.

이같은 협력은 첨단 기술 분야의 창업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알토 대학교에는 5G 이동통신의 테스트 베드 네트워크와 산업인터넷 캠퍼스(AIIC)가 구축돼 있다. 5G 네트워크는 헬싱키 대학, 알토 대학, 노키아 연구소 세곳을 잇는 형태이며 5G 이동통신과 관련한 모든 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다. 테스트 권한도 연구기관부터 학생까지 광범위하게 개방돼 있다. 산업인터넷 캠퍼스는 산업인터넷과 관련해 교수와 학생, 협력사를 망라하는 연구 플랫폼으로 노키아, 지멘스, ABB 등 유수 기업들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장비를 지원받고 있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사진설명알토대학교 산업인터넷 캠퍼스(AIIC) 내부 [사진 출처 : 매경DB]
▶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알토대의 산학 협력의 특징은 설령 대학에서 만들어진 기술로 창업했다 하더라도 대학이 지분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학에서는 기술 연구에 필요한 기반을 제공하고 실질적인 연구는 교수와 학생들이 주도한다. 대학은 이들이 개발한 기술의 지적재산권(IP)을 갖지만 라이선스 형태로 제공하고 매출이 발생할 경우에만 저작권 비용을 받는다. 따라서 교수와 학생들이 창업하는 데 큰 부담이 없다.

이처럼 연구실에서 만들어진 기술 기반 스타트업은 핀란드의 첨단 기술 경제에서 당당히 한 축을 맡고 있다. 알토대학의 5G 네트워크 연구 결과로 창업한 쿠무코어는 소프트웨어 정의 네트워크(SDN)와 네트워크 가상화(NFV)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탐페레 대학의 연구 프로젝트에서 출발한 사물인터넷 스타트업 와이어패스는 한국전력공사를 포함해 노르웨어, 인도 등지에서 스마트 검침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와이어패스의 세바스찬 링고 마케팅 담당자는 “연구 당시에는 다른 회사나 기관의 투자나 간섭, 도움 없이 독립적으로 진행했지만 창업으로 발전시키면서 정부기관의 지원을 받았다”며 “대학 연구에서 창업으로 이어지는게 핀란드에서는 일상적인 패턴”이라고 밝혔다.

[디지털뉴스국 김용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