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리와 M14, 그리고 갤럭시 노트8

<김영욱의 밀리터리와 IT>

  • 김영욱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부장
  • 입력 : 2017.09.06 12:52:26   수정 : 2017-09-07 09:2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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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든 한 무기 열 신무기 안 부럽다.

우리나라가 한창 산아제한정책을 추진할 때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라는 표어가 있었다. 남아선호 사상의 부작용으로 아이들을 계속 낳다 보니 사회가 수용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신생아들이 태어나는 것으로 방지하기 위함이다. 지금은 오히려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출산장려 정책을 열심히 펴고 있지만 말이다.
여하튼 저 표어는 무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잘 만들어진 무기는 신기술로 완전 무장한 무기들이 쏟아지는 현대전에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실제로 50년, 혹은 100년전에 개발된 무기들이 아직도 버젓이 사용되고 있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운용 기간만 40년, USS 미주리

대표적인 예로 미주리함을 들 수 있다. 이 전함은 1944년 진수돼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에게 엄청난 화력을 퍼부었던 군함이다. 16인치 함포 9문, 5인치 함포 20문, 그리고 보포스 40밀리 대공포를 무려 80문이나 장착하고 태어난 거함거포주의 시대의 산물이다. 세계 2차 대전 중에는 유황도 전투와 오키나와 전투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 열도의 섬에 함포 사격을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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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USS 미주리. 세계 2차 대전과 걸프전에 참전했다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이후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한국 전쟁이 끝나자 예비 장비로 돌려져 쉬게 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에 순항 미사일인 토마호크와 대함 미사일인 하푼을 탑재하는 등 현대화 작업을 거치면서 다시 태어나 재취역에 성공했다. 심지어는 1991년에는 걸프전에 참전해 다시 한번 함포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토마호크 미사일등을 발사하면서 제몫을 톡톡히 해냈다. 1993년에는 다시 퇴역해 지금은 진주만에서 전쟁 기념관으로 운용되고 있지만 1944년 취역해 1993년 퇴역하기까지 무려 48년여를 운용하다 보니 밀리터리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노인 학대’라는 우스개소리까지 나오는, ‘잘 키운 딸 하나’의 전형적인 예로 꼽힌다.

장점의 재조명, M14

소총에도 비슷한 예가 있다. 바로 M14다. 이 총은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 1954년에서 1964년 사이에 미군이 사용했던 소총이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미국은 일반 보병들에게 M1 소총과 M1 계열의 파생형들, M1918 자동 소총과 M3A1 기관단총, M1911 등 다양한 종류의 총기를 지급했다. 이쯤 되다 보니 각기 다른 총기에 맞는 탄약 및 부품을 공급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M1의 강력함을 가지면서 다른 총기들을 통합할 수 있는 총기로 M14를 개발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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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베트남전에서 M14를 사용하는 미군 [사진 출처 : streamcommunity.com)]
M14는 7.65mm 탄약을 사용하기 때문에 힘이 좋고 파괴력이 크다. 여기에 유효사거리가 길다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탄약을 결합하면 5.2kg이라는 적지 않은 무게와 큰 반동이 단점이었다. 자동 소총이었지만 반동으로 인해 연사를 하게 되면 허공에 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먼 거리를 두고 서로 격돌하던 것에서 근거리 접전으로 전투 양상이 전환되자 파괴력과 장거리 공격력보다는 휴대가 용이하면서도 화력을 적절하게 구사할 수 있는 돌격 소총이 두각을 드려냈다.

베트남전에서도 미군은 M14를 투입했지만 단점이 드러나는 데에는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지 않았다. 사정거리는 상대적으로 짧지만 신뢰성이 뛰어난 구소련의 AK47 소총을 든 남베트남군들이 게릴라전을 펼치면서 전선에서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정글은 가시거리가 짧아 M14가 보유한 긴 사정거리라는 장점 대신 무겁고 반동이 심한 단점만 부각됐다. 미군은 M14를 대신하기 위해 M16을 긴급하게 투입하는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M14는 대신 미국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 운용된 제식 소총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줄만 알았던 M14는 놀랍게도 다시 부활하는 영광을 얻게 된다. M14의 7.65mm 탄환이 보유한 긴 사정거리, 파괴력이라는 장점이 다시 주목받은 것이다. 따라서 M14는 단순히 스코프를 붙이기만 하면 스나이퍼까지는 아니더라도 원거리 저격용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여기에 최단기 운용이라는 불명예 덕분인지 창고에 멀쩡한 상태로 쌓여있는 M14가 부지기수여서 재활용에 적합했다. 이로 인해 기존의 M14를 개량한 M21이 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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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아프가니스탄에서 M21을 사용하는 미82 공수부대원 [사진 출처 : olove-drab.com]
비록 스코프를 붙이기는 했지만 스나이퍼에 특화된 총은 아니었기 때문에 스나이퍼보다는 지정사수소총으로 재활용됐다. 지정사수란 보병 분대 내에서 장거리 사격을 담당하는 보직으로 보통 약자로 DMR(Designated Marksman’s Rifle)이라고 표현한다. 일반 소총의 사정거리와 전문 스나이퍼 사이에서 주로 활동하는 역할을 맡는다.

갤럭시 노트의 귀환

지난해 삼성전자가 야심차게 출시한 갤럭시 노트7은 삼성전자 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었지만 결론적으로는 갤럭시 노트7은 배터리 폭발로 인해 조기 단종 절차를 밟았다. 삼성전자는 여러가지 대비책을 세웠지만 항공기 탑승 불가를 막지 못하는 등 전세계적인 문제로 비화하는 것에 대응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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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삼성 갤럭시 노트7 기내 반입을 금지하는 안내문 [사진 출처 : http://www.khaleejtimes.com]
배터리 문제가 워낙 되돌릴 수 없는 문제였긴 했지만 갤럭시 노트7 자체의 완성도는 매우 높았다. 미려한 디자인 이외에도 5.7인치 디스플레이와 최신형 프로세서, 그리고 펜을 통한 차별화 전략 등 노트 시리즈의 장점을 고스란히 살렸기 때문이다. 홍채인식을 통한 인증 방식은 적외선 방식을 사용해 어두운 환경에서도 사용이 가능했고 방수방진은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침수 사고로부터 고가의 스마트폰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다.

삼성전자는 노트 시리즈를 항상 하이엔드급 제품으로 출시한다. 따라서 가격도 높지만 완성도나 성능도 높은 기조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노트 시리즈만 사용하는, 소위 ‘노트 성애자’로 불리는 열성적인 고객 층도 있다. 노트7이 비록 폭발하긴 했지만 노트 성애자들은 다른 스마트폰으로 쉽게 옮겨가지 않았다. 노트 시리즈가 천편일률적인 안드로이드 폰 시장에서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지난 7월 2일 삼성전자는 단종시킨 갤럭시 노트7과 거의 동일하지만 배터리 문제를 해결한 갤럭시 노트 FE(Fan Edition)을 출시했다. 40만대 규모의 한정된 물량이었기는 했지만 그래도 배터리 때문에 노트7을 아쉬워했던 사람들에게는 좋은 선택지가 됐다. 뿐만 아니라 갤럭시 노트 FE는 비행기에 가지고 탈 수 있다는 고마움을 다시 누리게 해줬다. 아직까지는 별다른 사고가 없고 안정된 상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항공사에서 갤럭시 FE 모델은 규제를 하고 있지 않다.

미주리호나 M14를 닮은 갤럭시 노트8

삼성전자는 지난달 23일 갤럭시 노트8을 발표했다. 잘 구성된 무대와 행사에서 소개됐지만 놀라우리만큼 새로움은 없었다. 전반적인 느낌은 사이즈가 커진 갤럭시 S8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전작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우려는 전략인지는 모르겠지만 극단적으로 얇아진 베젤이 적용된 디자인이나 물리적인 홈 버튼이 사라지고 소프트 버튼으로 바뀐 점 등 갤럭시 S8과 거의 동일한 부분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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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갤럭시 노트8 [사진 출처 : 삼성전자]
물론 노트의 전통인 펜을 통한 차별화는 확인할 수 있었다. 글씨나 효과를 이용해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라이브 메시지나 동영상에서 필요한 부분만 잘라서 보낼 수 있는 스마트 셀렉트, 그리고 꺼진 화면에서도 메모가 가능한 기능 등등은 노트 시리즈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갤럭시 노트8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요즘 애플 신제품 발표회가 끝나면 공식처럼 등장하는 기사 제목처럼 ‘혁신은 없었다’를 말할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는 애플보다 더 많은 새로운 혁신들이 안드로이드 폰들에게서 일어나고 있다. 근거리 무선통신(NFC)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가상현실(VR) 제품과 연동 할 뿐만 아니라 자잘한 새로운 부품들의 도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에 반해 이번에 발표한 갤럭시 노트8은 혁신보다 안정에 초점을 맞췄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이같은 선택은 미주리호나 M14의 사례에 비춰보면 다른 해석을 낳는다. 새로운 기능들에 열광하는 얼리어뎁터들의 입장에서는 갤럭시 노트8이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겠지만 절대 다수의 일반인 노트 성애자들은 분명 구입할 것이고 또 만족할 것이다. 노트 시리즈는 이미 검증된 하드웨어 플랫폼이고 이미 익숙한 고객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성능과 용량은 좀 더 개선돼 있기 때문에 새로운 쾌적함을 줄 수도 있다.


은퇴했던 미주리호나 M14가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이유는 그 자체가 다른 유사한 제품들과는 달리 확실한 이득과 차별화된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면에서 볼 때 전작의 실패와는 별개로 이번 갤럭시 노트8도 나름 자기 영역을 잘 가져 갈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에는 폭발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승리한 군대라도 죽은 병사들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아돌프 히틀러




[김영욱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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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마이크로소프트에서 기술을 전도하는 에반젤리스트로 일하고 있으며 다양한 대형 프로젝트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 및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 DX팀에서 최신 기술을 다루고 있다. 과거 역사속의 전쟁들과 IT기업들의 이야기를 묶은 'War of IT'를 집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