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X가 보여주는 가상현실의 미래

<정덕영의 VR월드>

  • 정덕영 클릭트 대표
  • 입력 : 2017.09.29 16:50:52   수정 : 2017-10-11 09:3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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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애플 아이폰의 신제품이 발표됐다. 그러나 예전과 다르게 아이폰 8과 더불어 아이폰X라는 제품이 원 모어 씽(one more thing) 격으로 공개되면서 전세계적으로 갑론을박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 중 하나는 바로 아이폰X에 탑재된 증강현실(AR) 기술에 대한 얘기다. 가상현실(VR)의 시장 활성화가 더딘 이때 애플이 AR기술을 사용자들에게 들이미는 방법을 살펴보고 여기에 담긴 함의를 읽어보자.

기나긴 준비, 준비된 시작

애플은 지난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에 구현된 동작인식 솔루션 ‘키넥트’의 주요 기술 제공기업인 이스라엘의 프라임센스(PrimeSense)를 전격 인수한다.
이어 지난 2015년에는 독일의 AR기업 메타아이오(Metaio), 그리고 당시에는 상당히 뜬금없어 보이는 페이스쉬프트(Faceshift)를 인수한다. 지난해에는 이모티언트(Emotient)라는 회사도 인수한다.

이번 iOS11과 아이폰X 발표는 바로 이 회사들의 기술력이 집약된 결과다. 애플은 그동안 자신들이 목표로 하는 것이 뭔지를 명확하게 아는 상태에서 오랜 시간 동안 차분히,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특히 인수한 회사의 기술을 다듬어 이른바 애플화를 진행한 결과가 바로 이번 아이폰X와 iOS 11이라 할 수 있다.

얼굴 스캐너와 웃는 똥의 차이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지만 소니도 애플과 비슷한 기술을 최근 선보였다. 그것도 애플의 아이폰X 발표 며칠 전이다. 소니는 엑스페리아(Xperia) 신제품 발표와 더불어 신기능인 페이스 스캔 기능을 공개했다. 폰에 내장된 3D 스캐너를 통해 얼굴 뿐 아니라 사물을 3D 오브젝트로 스캔하는 기술이다. 아이폰X에 구현된 기술과 매우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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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소니의 얼굴 스캔 기능 [사진 출처 : 소니]
▶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며칠후 애플은 비슷한 기술을 총동원해 ‘웃는 똥’ 캐릭터를 선보였다. 애플과 애플이 아닌 회사가 기술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방법에 이처럼 큰 차이가 있음을 선명히 보여주는 사례가 또 있을까?

얼굴을 3D 오브젝트로 스캔해서 이리저리 돌려본다는건 멋진 일이다. 특히 필자 같은 경우는 열광할 기술이다. 하지만 이 기술이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애플은 인식된 얼굴을 다른 3D 캐릭터로 전환해 갖고 놀 수 있는 형태로 만듬으로써 기술을 자연스럽게 놀이로 전달했다. 소니 엑스페리아 스마트폰에 탑재된 기술과 센서들도 아이폰X의 그것과 대동소이하겠지만 소비자가 바라볼 때 느끼는 결과는 크게 다르다.

웃기는 똥 캐릭터 뒤에 숨겨진 기술들

내 표정을 따라하는 똥 캐릭터의 뒤에는 애플이 인수한 여러 회사들의 기술이 숨어 있다. 머신러닝, 3D 스캔, 안면인식과 그에 기반한 감정인식, AR 기술 등은 지금까지는 전문가용 프로덕션 툴에 이용하는 기술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이폰8과 X에 탑재됨으로써 앞으로 출시될 앱들의 가능성은 무한에 가깝게 됐다. 과거 아이폰의 등장으로 휴대용 동영상 플레이어(PMP)와 자동차용 내비게이션 기기 업체들이 고사한 것처럼 이번에는 중저가의 다양한 전문가용 프로덕션 툴 제작사와 서비스 제공사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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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애플의 애니모지의 똥 캐릭터 [사진 출처 : 애플]
상당한 품질의 CG 프로덕션 앱들, 즉 현재 수십개의 카메라를 얼굴에 투사해 수행하는 얼굴 모션 캡쳐 기술을 제공하는 회사, 그리고 단일 카메라로 얼굴을 촬영하고 알고리즘으로 인식하는 회사들과 중저가 3D 스캐너를 제조하는 회사들에게 지속적인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3D 프린터 업체들에게는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순식간에 위치가 뒤바뀐 구글과 애플

구글은 오랜 기간동안 AR을 위해 투자를 진행해 왔다. 구글이 수년간 진행중인 탱고 프로젝트는 복수의 센서와 카메라를 내장한 안드로이드 기기에서 돌아가는 AR플랫폼이다. 정확도에 있어서는 애플의 AR킷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훌륭한 결과를 보여준다.

문제는 탱고 지원 기기가 출시됐어도 판매량이 미미한 수준에 그쳤으며 인기도 없었다는 것이다. 안드로이드의 특성상 탱고 기술이 모든 기기에 탑제될 가능성은 애초부터 극히 낮았다. 반면 애플의 AR킷은 구글의 탱고만큼 정확하진 않지만 이를 애플 특유의 센스로 만회하는 기지를 발휘하고 있다.

구글의 문제는 해당 기술이 적용될 때 사용자에게 어떤 효용이 있을지, 어떤 재미를 줄 수 있을지 보여줌을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기술 우선주의 감성이 배어있는 구글은 해당 기술이 얼마나 정확한지, 그리고 가능성이 얼마나 큰지를 말하지만 그걸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라는 점에서 꿈과 희망을 재미로 포장해 전달하지 않았다. 아니 말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을 수도 있다.

반면 애플 WWDC에서 AR킷의 첫 데모는 바로 게임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가? AR킷 공개와 동시에 전세계 개발자들은 AR킷으로 온갖 재미있는 장난감과 유용한 툴들을 만들어 유튜브 등을 통해 공유했다.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들이 영상으로 확산되면서 야기된 파급효과는 실로 엄청난 수준이었다. 결국 구글은 탱고의 코어를 분리하고 정리해 구글 AR코어로 만들어 발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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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애플 WWDC에서의 AR발표 화면 [사진 출처 : 애플]
차이는 하나 더 있다. iOS 11 업그레이드를 통해 아이폰 se, 아이폰 6s, 아이패드 등 A9칩 이상을 사용하는 iOS기기에서 AR이 구동된다는 것은 애플이 하루 아침에 수억대의 AR기기와 플랫폼을 확보했음을 의미한다. 좋든 싫든 간에 애플은 한순간에 전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AR플랫폼 홀더가 된 것이다.

익숙한 기술로 새로운 결과 만들기

애플에서 무언가를 발표하면 늘 비슷한 비아냥이 따라 붙는다. ‘그건 원래 있던 기술이다.’ ‘안드로이드에서도 다 되는 기술’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이제 일상이다. 게다가 대부분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되는 것과 아주 잘되는 것, 기술자가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과 소비자가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은 천지차이다.

현재 전세계 VR 시장 상황은 그간의 성장세를 뒤로 하고 주춤거리는 양상이다. 머리를 망치는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 디자인부터 불편한 케이블까지 여러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스타플레이어가 등장해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고 현 상황을 타개해주길 바라고만 있는 작금의 상황에 애플의 이번 발표는 현 VR 플랫폼 홀더들에게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정덕영 클릭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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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게임 업계에서 활동했던 컴퓨터그래픽(CG) 전문가로 대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우연한 기회에 오큘러스 리프트 DK1을 접한 뒤 VR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점찍고 모바일과 VR을 접목한 솔루션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 기어VR의 런칭 타이틀인 경주 VR 뮤지엄, 일본 미토 미술관의 세계 첫 워킹 VR 전시인 블라인드 퍼스펙티브 등을 제작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