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보 3’에서 알 수 있는 스마트TV 패자는

<김영욱의 밀리터리와 IT>

  • 김영욱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부장
  • 입력 : 2017.04.04 10:46:45   수정 : 2017-04-07 09:41:10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사진설명람보 2의 포스터 [사진 출처 : 매경DB]
매년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는 IT업체들의 트랜드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행사다. 최근에는 MWC가 부상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CES는 세계 최대의 전자 박람회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업체들도 매년 적지 않은 부스와 발표를 하기 때문에 국내에도 꽤 많이 알려져 있다.

뒤늦게 CES를 말하려는 이유는 CES의 트렌드가 최근 몇년새에 급격히 변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CES의 주인공 자리에서 가전이 밀려나고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 등이 각광받고 있다. 스마트 홈, 드론도 마찬가지다.

이같은 변화는 TV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올해도 각각 퀀텀닷발광다이오드(QLED), LG전자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치열했던 스마트 TV들과 3D TV들은 다 어디 가고 다시 디스플레이 경쟁이 불붙은 걸까?

그 답을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에서 찾아보자. 첨단 기술 전쟁도 총성만 울리지 않을 뿐 과거 영토를 놓고 다투던 전쟁과 다를 바 없다. 냉전 시대 전세계를 양분했던 소련(현 러시아)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떻게 패배의 쓴잔을 마시게 됐는지 보면 스마트TV에서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람보 3의 배경인 아프가니스탄

1980, 90년대를 휩쓸었던 액션 대작 ‘람보’ 시리즈는 격렬한 액션신 때문에 역사적 배경은 정작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람보 1, 2의 배경에 월남전에 있었다면 람보3의 배경에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배경이 됐다.

소련은 1979년에서 1989년까지 10년에 걸쳐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는데 소련판 베트남 전이 됐다고 말할 정도로 소모적인 전쟁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은 국토의 대부분이 돌무더기인 척박한 땅인데다가 험준한 산악 지역이 많아서 경제적인 가치는 떨어지지만 지정학적인 위치로는 소련이 원하는 인도양으로 가는 길목이고 이란과 파키스탄, 중국등과 연결돼 있을 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길목이어서 소련에게 매우 중요한 거점이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사진설명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1973년 아프가니스탄의 왕조가 무너지고 혼란에 빠져 있었던 아프가니스탄은 좌파 정당인 인민민주당이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고 공산 정권을 수립한다. 하지만 공산정권에 반대하는 지방 부족 세력들이 반발하기 시작했고 이는 결국 무장 게릴라 투쟁으로 이어져 정부에 대항하는 세력이 된다. 이 무장 게릴라 세력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무자헤딘이라고 불렀다. 무자헤딘은 이슬람 자유 전사라는 뜻으로 이슬람교의 종교적 신념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열악한 상황에서도 죽기 살기로 싸울 수 있었다.

그러나 집권한 아프가니스탄 공산 정부 내에서도 분열이 생기는 와중에 일부 정부군이 반정부군에 가담해 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 와중에 소련의 군사 고문단과 민간인들 300~500여명이 학살당하고 시체가 훼손되는 사건이 터졌다. 결국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 직접 개입해서 상황을 정리해서 정세를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 가려고 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대통령이었던 아민을 사살한 뒤 전차 부대를 앞세워 빠르게 점령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그리고 그 계획은 1979년 12월 24일 새벽 모두가 잠들어 있던 새벽에 실행됐다.

소련은 12월 25일 작전이 본격적으로 수행되자마자 아프간군 지휘관을 모두 체포하고 대통령궁을 급습해 호위대 200명을 사살했다. 실로 빠르고 치밀한 작전수행 능력이다. 아민 대통령과 그 가족들까지 모두 사살해 버렸다. 공수부대, 장갑차, 전차등이 전속력으로 전진했고 보병 부대가 마지막으로 투입돼 주요 도시들을 점령하면서 초기 작전은 일사천리에 성공으로 막을 내렸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사진설명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있는 소련의 장갑차들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그러나 문제는 초기 작전의 성공 이후에 일어났다. 그동안 정부군과 교전을 벌이던 무자헤딘이 소련을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자헤딘은 아프가니스탄의 험준한 산악지형을 이용한 전투에 능했지만 소련군은 유럽의 넓은 평야지대에서 물량 공세를 위주로 준비되었던 부대여서 산악전에 대한 대비가 없었다. 소련군은 무자헤딘이 산악지형을 이용한 게릴라전을 수행하면서 많은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었다.

무자헤딘을 이끌던 7명의 지도자 중에 아흐마드 샤 마수드가 가장 유명했는데 하필이면 마수드가 주요 활동 무대로 하고 있는 지역이 소련이 물자를 실어나르던 보급 경로였다. 마수드는 기동 타격을 기본 개념으로 각 지역별로 방어군을 편성하고 전투가 개시되면 빠르게 기동군을 투입해서 격파하는 전술을 구사했는데 아프가니스탄의 지형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면서 소련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소련군은 마수드 군을 제압하기 위해서 판지시르 계곡에 전략적으로 병력을 투입해서 9차례나 공세를 이어갔지만 결국 마수드 군을 제압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1982년에 소련측에서만 3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으며 이를 본 아프가니스탄 정부군 1000여명이 무자헤딘에 합류하기도 했다. 무자헤딘은 미국과 서방세계의 지원을 몰래 조용히 받으며 지속적으로 전쟁을 이어 나갔다. 소련군은 자잘한 승리를 거두기도 했지만 전쟁의 흐름을 바꾸지 못했고 상황은 점점 장기화됐다.

 기사의 3번째 이미지
사진설명MI-24 공격용 헬리콥터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소련이 내세운 비장의 무기, 공격용 헬리콥터 MI-24

전사자가 만명을 넘어가면서 소련군은 슬슬 자신들이 미군이 베트남전에서 겪었던 것과 같은 수렁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좀 더 적극적인 대응 방법들을 내놓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공격용 헬리콥터 투입이다. MI-24는 ‘날아다니는 전차’라는 별명에 걸맞게 강력한 장갑판을 두르고 있어서 소총, 기관총 등으로는 절대 격추할 수 없었다. 또 엔진 등의 주요 부위에는 티타늄 장갑판이 설치돼 있어 14.5mm 탄까지 모두 방어할 수 있다. 여기에 로켓, 기관포, 대전차 미사일등을 주렁주렁 달 수 있어 무자헤딘으로는 도무지 감당 할 수 없는 존재였다. 한 무자헤진 무장 게릴라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을 정도였다.

“우리는 러시아인 따위는 무섭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헬리콥터는 정말 무섭다.”

무자헤딘은 별다른 대공무기가 없었기 때문에 MI-24는 900m 상공에서 대기하다가 갑자기 급강하하면서 클러스터 폭탄이나 로켓탄, 기관포 등으로 심각한 피해를 줬다. 공격용 헬리콥터가 아프가니스탄의 하늘을 장악하고 나면서부터 무자헤딘은 활동에 큰 제약을 받게 되고 전세도 슬슬 역전되기 시작했다.

 기사의 4번째 이미지
사진설명스팅어 미사일은 운영하고 있는 무자헤딘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그러나 상황은 다시 한번 변화를 맞이한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미국은 무자헤딘을 돕기 위해서 CIA자금으로 휴대용 대공 미사일인 스팅어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스팅어는 열추적 방식의 유도 미사일로 주로 2인1조로 발사할 수 있었다. 스팅어 미사일은 사람이 직접 휴대가 가능할 정도로 작고 가벼운 점은 장점이지만 또 그만큼 화력은 충분하지 않은 단점도 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는 79%의 명중률과 33%의 격추률을 보였다고 하니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둔 샘이다. ‘찰리 윌슨의 전쟁’이라는 영화를 보면 미국이 어떻게 비용을 정치적으로 마련해 아프가니스탄에 지원했는지 알 수 있다.

무자헤딘이 스팅어 미사일을 통해서 대공 능력을 갖추게 되면서 소련도 마음 놓고 헬리콥터나 수송기를 날릴 수 없게 되었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800 여대의 헬리콥터를 잃었다.

결국 1989년 소련은 이렇다 할 성과도 없이 철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인적인 손실도 크지만 경제적 문제도 점점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소련 내부적으로는 경제 문제가 표면화 되고 있었고 또 아프가니스탄은 소련 젊은이들에게 반전사상과 염세적 허무주의가 퍼지는 등 사회 문제가 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상황이 더 좋아지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이유가 철수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야말로 아프가니스탄은 소련을 위해서 준비되어 있었던 또 하나의 베트남이었던 것이었다.

IT계의 아프가니스탄이라고 할 수 있는 스마트 TV

스마트폰과 타블릿 시장이 점차 성숙단계로 접어들면서 IT업계는 다음 시장은 어디일까를 빠르게 점쳐보고 투자하고 있는 중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시장은 사물인터넷(IoT), 그리고 이와 연계한 스마트 TV를 이야기하고 있다. 사물인터넷 분야는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기술 비용으로 인해서 인터넷과 연결될 수 있는 다양한 제품들이 시장에 출시되고 있다. 이미 무선 인터넷과 연결된 체중계, 초인종, 화재 감지기 등등 다양한 형태의 제품들이 이미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또 각종 헬스케어 제품들이나 혹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등도 점차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TV의 경우는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차세대 먹거리라고 했지만 기존의 전자 업계와 인터넷 포탈 그리고 소프트웨어 업체와 인터넷 서비스 업체의 중간 지점에 애매하게 걸쳐져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특별히 두각을 드러내는 업체도 없을 뿐 아니라 사용자들도 선호하는 브랜드도 없다. 그런 면에서 스마트TV 시장은 또 하나의 아프가니스탄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여러 군데 맞물려 있어서 가치는 충분해 보이지만 그다지 실익을 가져다 주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스마트 TV를 차세대 먹거리로 고민하는 업체들의 가장 큰 고민은 여전히 원론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 바로 스마트 TV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다. 유튜브 동영상을 본다든지 혹은 웹 검색을 하기 위해서 일부러 PC를 켜는 것만큼이나 TV를 켜는 것은 불편하다. 오히려 요즘엔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에 손이 먼저 간다. 지금까지 사용자들은 TV를 사용하는 패턴을 바꿀 이유를 아직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데 오히려 IT업계가 계속 사용자들에게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용자의 24시간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IT 기업들은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스마트TV 시장에서 또 다른 무자헤딘 혹은 탈레반을 만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사용자들을 잘 이해한다면 테러리스트가 아닌 따뜻한 할아버지, 옆집 아저씨, 앞집 총각, 뒷집 꼬마 아가씨와 같은 따뜻한 고객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모회사의 광고 카피처럼 ‘또 하나의 가족’을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자세가 스마트 TV에 필요하다.

'모든 전쟁은 내전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형제이기 때문이다.- 프랑소와 퍼네론'

[김영욱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부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섬네일 이미지
김영욱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다른기사 보기
한국마이크로소프트에서 기술을 전도하는 에반젤리스트로 일하고 있으며 다양한 대형 프로젝트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 및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 DX팀에서 최신 기술을 다루고 있다. 과거 역사속의 전쟁들과 IT기업들의 이야기를 묶은 'War of IT'를 집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