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가 오픈소스 외치는 이유, 모히 전투에서 답을 찾다

<김영욱의 밀리터리와 IT>

  • 김영욱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부장
  • 입력 : 2017.05.10 11:21:50   수정 : 2017-05-11 09:2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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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키예프를 공격하는 몽골군을 그린 그림 [사진 출처 : http://kiev-hotel.net/reference/ukraine-history.html ]
1240년 당시 러시아의 최대 도시였던 키예프에는 갑자가 엄청난 숫자의 기마병들이 나타났다. 바로 몽골군이었다. 키예프 사람들은 몽골군과 열심히 싸웠지만 한 달도 안되어 점령당하고 말았다.

키예프 사람들은 생전처음 보는 무기들과 공격방식에 몽골군들을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키예프를 점령한 몽골군은 거침없이 유럽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몽골군은 군대를 둘로 나누어서 한 부대는 북쪽으로 진군하면서 폴란드를 거쳐서 독일로 진군했고 다른 한 부대는 헝가리를 거쳐서 빈으로 점령해 들어갔다.

폴란드 크라코프 지역도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점령당했다. 북쪽의 몽골군은 쉬지 않고 독일로 진격해 들어갔다. 독일에서는 하인리히 2세가 이끄는 독일군과 프랑스 연합군이 출정했다. 하지만 수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몽골군에게 참혹하게 학살당한다. 그리고 며칠 뒤 남쪽으로 진군했던 몽골군은 헝가리의 10만 대군과 대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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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폴란드 크라코프의 나팔수. 지금도 나팔을 주기적으로 불고 있지만 끝까지 불지 않는다. 그 이유는 몽골군이 쳐들어 왔을 당시 이를 알리기 위해서 탑에 올라가 나팔을 불었지만 끝까지 불기도 전에 목에 몽골군의 화살을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했던 나팔수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사진 출처 : EBS]
몽골군의 지략이 빛난 모히 전투

1241년 4월 1일 모히 평원에서 전투가 시작됐다. 이미 북쪽에서 독일과 프랑스 연합군이 몽골군에게 몰살당했기 때문에 헝가리의 10만 군사는 어쩌면 유럽의 마지막 희망이기도 했다. 그래서 헝가리군은 나름 계획을 세웠다. 몽골군이 말타기에 능하고 치고 빠지기를 주특기로 하는 능력을 고려해서 적절한 방어 위치를 찾아서 방어 위주의 전술을 세워 놓고 있었다. 비책은 마차를 이용한 이동식 방어진지였다. 방어력을 강화한 마차를 둥글게 연결해서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몽골군은 돌파를 시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차로 된 방어진지를 에워싸고 포위해버리자 헝가리군은 오히려 방어진지 안에 갇혀 버린 상태가 돼버렸다. 몽골군은 거의 40~50m까지 근접해 화살을 쏴 헝가리군의 갑옷을 뚫고 치명적인 피해를 가했다. 방어하는 헝가리군 입장에서는 말을 타고 계속 움직이는 몽골군을 맞추기도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조준을 하다 보면 어느 사이에 사정거리 밖으로 벗어나 있었다.

더 기가 막혔던 것은 화살만 날라오는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몽골군은 투석기도 있었고 화약과 나프타 같은 물질들도 다룰 수 있었다. 투석기를 이용해 불타는 화약과 나프타, 기름 등을 마차 넘어 원형 진지 안으로 연이어 발사했다. 헝가리 군은 마차로 만들어진 진지 안에서 보호받고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갇혀 있는 상태에서 맹목적으로 공격을 당하게 됐다.

헝가리군이 공포와 절망으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을 때 몽골군이 갑자기 포위망의 한쪽을 슬그머니 열어줬다. 공포에 휩싸인 헝가리 병사들은 일제히 탈출하기 시작했으며 몽골군은 탈출하는 헝가리군을 좌우 양쪽에서 같이 달리며 흩어지지 못하게 막았다. 양치기 개들이 양때를 모는 것과 유사한 형국이다.

그런데 헝가리군이 살기 위해 달려나간 곳에는 더 큰 절망이 있었다. 바로 몽골의 정예군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포위망을 열어준 것은 몽골군이 마차 요새를 뚫고 들어가지 않기 위해 헝가리군을 유인해낸 것이었다. 결국 모히 전투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몽골군의 의도대로 흘러갔다. 몽골의 정예군 앞에 방어시설도 없이 노출된 헝가리군은 때죽음을 당했으며 헝가리 왕만 겨우 목숨을 부지해서 도망쳤다.

혁신의 수용이 만들어낸 차이

전쟁사가들은 몽골군의 강점을 가마병들의 기습적인 스피드와 가볍고 빠른 전법에서 많이 찾는다. 물론 몽골군의 놀라운 스피드와 기습전술은 지금 봐도 대단한 수준이다. 당시 몽골군은 하루에 160Km를 이동하기도 했는데 세계 2차 대전에서도 대부분 50Km 이상 진군하기 어려웠던 사실에 비춰보면 가공할 만한 기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 유럽의 기사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것은 몽골의 신무기들이었다. 철갑에 의지해 칼싸움을 일삼았던 유럽인들에게는 공성병기들뿐만 아니라 화약을 다루는 기술들까지 모두 충격적인 무기들이었던 것이다.

50여년 전에만 하더라도 초원의 유목민에 불과했던 몽골이 갑작스럽게 엄청난 무기 기술을 보유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할 수 있었던 힘은 몽골의 열려있는 수용 정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원래 징기즈칸은 성장하면서 배신을 거듭하고 서로에게 실망을 주는 씨족 문화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혈통에 의지하기보다 충성심과 전우애 등에 더 큰 가치를 뒀고 이러한 사상은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같은 편으로 수용하는데 크게 도움이 됐다.

징기즈칸은 점령지라도 훌륭한 기술과 인재가 있으면 주저 없이 도입하고 실용화했다. 중국을 점령하고 나서도 중국이 가지고 있었던 공성무기들과 화약 기술을 도입했고 또 중국 병력들을 부대에 편입시켰다. 그 결과는 1258년 이슬람 최대 도시인 바그다드를 공격할 때 나타났다. 바그다드 공략전에서 전면에 나섰던 것은 중국으로부터 도입한 공성무기와 중국 공병들이었다. 중국의 뛰어난 공성무기들이 투입되자 바그다드는 열흘을 못 버티고 무너졌다. 1268년 남송과의 전쟁에서는 이번에는 아랍권의 기술을 사용했다. 아랍권의 신식 투석기인 회회포로 남송의 성들을 공략했다. 견고한 방어진을 짜고 있었던 남송도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또 징기즈칸은 새로운 땅을 점령할 때마다 그 중에서 고아를 한 명 찾아내 본인의 어머니가 기르도록 했다. 그 결과 징기즈칸은 새로운 땅에서 승리를 할 때마다 새로운 형제가 한 명씩 생겼으며 결국에는 모든 점령지를 형제의 땅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더 이상 몽골에서는 어느 부족 출신인가가 중요하지 않은, 모두가 다 같은 몽골족으로 대우 받게 되었다. 이런 관행은 징기즈칸을 이어받은 우구데이칸, 뭉케칸, 쿠빌라이칸 등 모든 후계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결국 징기즈칸 한 명의 열린 생각이 몽골 초원을 통일하고 유럽과 중동,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대 제국을 건설하는 기초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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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전세계 클라우드 시장 점유율.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소스를 잘 지원하면서 AWS를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인포월드]
오픈소스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구글, 아마존 뿐만 아니라 이제는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까지 오픈소스 대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오픈소스란 단순히 지금 갖고 있는 소프트웨어의 원천 소스를 공개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큰 기업들이 오픈소스에 참여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소유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자산의 소스코드를 공개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미 공개돼 있는 오픈소스들을 잘 지원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오픈소스는 소스를 공개했을 때 발생하는 노하우의 노출이라는 리스크를 감안하고도 얻는 게 많다는 것이 최근 IT업계의 셈법이다. 소스를 공개했고 또 라이선스까지 풀어놓았으니 아무나 다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소스를 공개하면서 자기 회사의 기술을 선호하고 사용하는 엔지니어의 숫자를 더 많이 확보하는게 더 큰 이익이다.

최근 IT기사들을 보면 ‘MS가 미쳤다’는 비슷한 제목의 기사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최근 들어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MS를 달리 표현할 수 없어서 그러는 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때 오픈소스에 어둠의 세력이니 암이니 하는 표현을 일삼았던 MS가 오픈소스 분야에 쉬지 않고 러브콜을 보내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이런 움직임의 이유는 MS가 더 이상 윈도우 회사가 아니라 클라우드를 주력 사업으로 하는 회사가 되서다. 클라우드는 다양한 오픈소스 기술들이 더 많이 활용되고 유통되는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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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국내 오픈소스 매출현황 [사진 출처 : 소프트웨어 정책 연구소]
이 이야기는 비단 글로벌 기업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국내에서도 오픈소스 관련 매출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으며 국내 IT기업들의 체질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징기스칸이 다양한 문화와 기술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꺼리낌이 없었던 것은 혈연보다 더 큰 가치를 얻는 방법에 대한 고민과 어린 시절 겪어야만 했던 고난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지금 IT업계도 시장의 흐름과 요구사항을 실시간으로 반영하고 적용하기 위해서 자기 스스로를 공개하는 과감한 모습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국내 엔지니어들은 아직 오픈소스 기술들에 기여하기 보다 활용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다수여서 아쉬운 측면이 있다. 국내 업체들도 좀 더 많이 오픈하고 전세계와 소통하면서 미친듯이 달리는 시장에 올라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작전계획이란 적의 주력 부대와 마주치고 난 이후에 바뀔 수 있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꾸준히 계획하는 것 만이 의미가 있다.’ – 헬무스 몰케


[김영욱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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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마이크로소프트에서 기술을 전도하는 에반젤리스트로 일하고 있으며 다양한 대형 프로젝트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 및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 DX팀에서 최신 기술을 다루고 있다. 과거 역사속의 전쟁들과 IT기업들의 이야기를 묶은 'War of IT'를 집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