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 솜 전투를 통해 바라본 AI와의 동거

<김영욱의 밀리터리와 IT>

  • 김영욱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부장
  • 입력 : 2017.06.13 15:35:40   수정 : 2017-06-14 10:48:06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인공지능과 인간의 바둑 대결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올해 대결에도 계산기로서의 컴퓨터가 아니라 인간처럼 학습을 할 수 있는 알파고라고 불리는 컴퓨터가 다시 한번 등장했다. 지난해 이세돌과의 대결에서는 한 번을 제외하고 전승을 거뒀던 알파고는 올해 열린 중국의 바둑기사이자 세계 랭킹 1위인 커제와의 대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 인간과 기계와의 대결을 기계의 일방적인 승리로 마무리 했다.

그러나 원론적으로 기계는 인간이 더 많은 일을 잘 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사람과 자동차가 경기장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면서 인간이 졌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컴퓨터가 사람을 이겼다고 두려워하기보다 그냥 컴퓨터가 이만큼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한다. 다만 지능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터미네이터, 매트릭스와 같이 기계들이 지배해는 암울한 미래를 떠올리게 하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인 것도 같다. 독일군이 기관총이라는 신무기를 앞세워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던 1차 세계대전의 솜 전투에서 앞선 기술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아보자.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사진설명솜 전투중 영국군 체서 연대의 참호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1916년 7월 1일 솜 전투 직전의 아침

“어떤 이는 기도문을 되뇌었고 어떤 이는 잠시 전선을 덮었던 얇은 안개를 녹여버리며 푸른 하늘을 선사하고 있는 아침 태양을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어떤 이는 묵묵히 아침식사를 했다. 독일군 진영에서 흙과 물이 뒤섞인 포연이 작렬하는 동안 영국군 진지 곳곳에서는 아침식사를 조리하는 하얗고 낭만적인 연기가 피어 올랐다. 장교들은 군화를 닦거나 실제 전투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지만 자신들의 귀중한 장비인 지휘봉 혹은 지팡이를 정성스레 손질했다 … (중략) 어떤 병사들은 참호 밖으로 나온 잠망경을 통해서 어떤 병사는 아예 참호 위에 걸터앉아 3km 밖의 땅에서 작렬하는 엄청난 포화와 연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존 키거는 저서 ‘전쟁의 얼굴’에서 1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처절했던 전투 중 하나인 솜 전투가 시작된 1916년 7월 1일의 모습을 이와 같이 그려냈다.

영국군은 솜 전투에 들어가기에 앞서 약 1500문의 대포를 동원해서 독일군에게 8일 동안 거센 포격을 가했다. 특히 진군이 예정되어 있었던 7월 1일에는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을 쓸어 버릴 기세로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영국군이 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 퍼부은 포탄만 150만발이었다. 이런 어마어마한 공세에 힘입어 영국군은 이미 승리를 확신했고 또 진군만 하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 이 정도 맹렬한 포격이면 땅 위의 철조망과 기관총은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을 것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독일군 진지에 가까이 접근하면서 철조망이 모두 건재한 것을 확인했으며 동시에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날아드는 독일군의 기관총 세례에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독일군은 영국군의 진격이 시작 되기 전 8일 동안 포격이 이어지고 있을 때 지하 20m 아래의 대피호에서 공포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대피호는 포격을 견딜 수 있도록 잘 구축돼 있었지만 바로 머리 위에 포탄이 떨어지는 충격과 소리를 듣는 것은 무척 괴로운 일이었다. 충격에 흙더미라도 무너지면 쉴새 없이 통로를 다시 파야만 했다.

하지만 이렇게 고통스럽고 공포에 질려 있으면서도 한가지 잊지 않은 것이 있었다. 탄막 전술로 쏟아지는 포탄의 비가 그치면 영국군이 바로 밀어닥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독일군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포탄 세례가 그치면 바로 기관총을 들고 주요 거점을 향해 내달렸다. 폐허가 될 때마다 기관총을 들고 거점 구축을 반복한 결과 포화 속에서도 기관총 진지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런데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던 영국군은 바로 이 죽음의 경주에서 별다른 긴장없이 총을 어깨에 멘 채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군이 느긋하게 걸어오는 동안 이미 독일군은 기관총을 거치하고 탄창을 걸어놓고 킬링존을 형성했다. 집중 포화에도 멀쩡했던 철조망에 당황하는 영국군에게 독일군의 기관총은 사정없이 날아들어 영국군의 살을 찢고 뼈를 부수어 놓았다. 영국군은 하루 만에 5만8000여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이 중에서 1만9000여명이 사망하는 대참사를 빚고 말았다.

이렇게 많은 사상자가 난 이유 중 하나로는 기관총의 활발한 보급으로 보병들이 포병 없이 엄청난 화력을 낼 수 있게 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솜 전투 때 독일군이 사용했던 맥심 기관총은 분당 400발을 쏟아 낼 수 있었다. 기관총 한 정을 운영하기 위해서 6~8명이 필요했지만 맥심 기관총의 화력은 몇십명에서 몇백명 분의 역할을 해냈다. 실제로 솜 전투에서는 30m를 전진하는 동안에 한 개 중대가 전멸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지휘관들의 문제였다. 참호를 파고 기관총을 거치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 적에게 총검 착검과 돌격이 가능하다고 믿었다는 점이다. 덕분에 상상을 초월하는 병력이 극히 짧은 시간 안에 소멸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인공지능 이제는 피할 수 없는 기술

1차 세계대전에서 기관총이 사상자를 크게 늘렸지만 원래 기관총의 시작은 남북전쟁 때 의사였던 리차드 개들링이었다. 리차드 개들링은 남북전쟁 당시 워낙 많은 사람들이 죽는 이유가 많은 총을 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동원돼야 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한 사람이 많은 총의 역할을 대신하면 상황이 좀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총열을 여러 개 붙여서 연사가 가능한 총을 만든 것이 기관총의 모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만든 기관총은 반대로 사상자 수를 극적으로 늘리는 결과를 낳았다.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사진설명개틀링 건 [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개틀링 건이라는 엄청난 화력을 구사하는 기계가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지휘관들은 여전히 병력의 숫자가 승리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 생각하고 줄지어서 앞으로 전진하도록 명령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참사가 바로 위에 언급한 솜 전투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가 아니라 ‘뭉치면 다 죽고 흩어져야 산다’로 전술이 바뀐 것은 제법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다.

인공지능은 솜 전투 때의 기관총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기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투명하게 운용돼야 하고 신뢰할 만한 기술을 사용해서 구성해야 한다. 엘런 머스크 테슬라 회장은 이같은 이유로 비영리 단체인 오픈 AI 연구소를 만들어 투명한 인공지능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MS, 아마존, 인포시스 등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MS가 AI의 민주화라는 화두를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AI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긍정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기관총과 사람이 경쟁할 수 없듯이 인간과 인공지능은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미 고객센터 등에서는 반복되는 단순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보다 쉽게 제공하기 위해 챗봇이라는 이름으로 인공지능 기술들을 도입하고 기존 상담원은 좀 더 복잡하고 어려운 질문들을 답변하는 쪽으로 역할이 이동하고 있다. 또 산업 현장에 설치된 CCTV를 인공지능이 분석해 위험 요소를 사전에 파악하고 알려주는 서비스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측면으로 보면 저출산으로 인한 생산력 감소에 따르는 문제에 대해 인공지능 기술은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해결 방안 중의 하나이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인공지능 기술이 하나의 이벤트가 아니라 장기적이고 국가의 미래와 관련 지어 좀 더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시행 착오를 겪어야 할 마지막 시기일지도 모른다.

[김영욱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부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섬네일 이미지
김영욱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다른기사 보기
한국마이크로소프트에서 기술을 전도하는 에반젤리스트로 일하고 있으며 다양한 대형 프로젝트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 및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 DX팀에서 최신 기술을 다루고 있다. 과거 역사속의 전쟁들과 IT기업들의 이야기를 묶은 'War of IT'를 집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