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 방향으로의 공격’ 장진호 전투를 통해 본 IT 기업의 결심과 변화

<김영욱의 밀리터리와 IT>

  • 김영욱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부장
  • 입력 : 2017.07.21 18:19:33   수정 : 2017-07-24 09:4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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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치열하지 않은 전투는 없었다. 목숨을 걸고 싸운 병사들도 모두가 영웅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두드러진 부대를 꼽자면 미 해병대 1사단을 들 수 있다.

미 해병대 1사단은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제일 먼저 투입된 부대 중 하나다.
또 낙동강 방어전, 인천상륙작전, 원산상륙작전 그리고 장진호 전투와 흥남 철수 작전 등 한국전쟁 중 벌어진 크고 주요한 전투에 모두 등장하는 부대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방미시 가장 먼저 찾아간 장진호 전투 기념비의 주역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당시 지루한 소모전을 계속하면서 낙동강 전선을 형성하고 있을 때 북한군의 배후를 노린 인천 상륙 작전은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큰 전환점이 되었다. 인천 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은 사실상 보급이 끊기고 부대가 나눠지게 되면서 전황이 급격하게 불리하게 된다.

'반대방향으로의 공격' 장진호 전투

이후 북쪽의 원산항과 흥남항을 확보한 미군은 미 해병대 1사단에 장진호를 확보하라는 새로운 작전을 하달한다. 장진호는 흥남에서 북서쪽 개마고원 안에 있는 호수로 미 해병대 1사단은 태평양 전쟁까지 경험한 노련한 병사들이 많았지만 개마고원과 같은 산악지형에 추운 겨울 날씨를 경험해 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위험 요소가 상당히 많은 곳이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방미기간 중에 헌화했던 장진호 전투 기념비가 바로 이 지역에서 일어난 치열한 전투를 기억하기 위해서 세워진 것이다.

사단장 스미스는 상당히 신중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각종 시설을 갖추면서 배후를 확보하면서 조심스럽게 진격했다. 하지만 이에 반해 미 7사단 국군 수도사단, 국군 3사단등은 이미 빠르게 북진하고 있었다.

당시 전황 자체는 미군과 국군 모두에게 유리했고 북한군은 여지없이 밀려나고 있는 형세였지만 이상 기류도 조금씩 감지되고 있었다. 1950년 11월 2일 함흥 북방에 있는 수동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평양에서 후퇴한 북한군과 교전이 있었는데 이때 중공군 포로가 발견됐다. 이를 통해서 중공이 한국전에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전부터 일본에 설치된 극동 사령부나 CIA에서 중공군의 본격적인 개입을 경고했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 주둔한 미군은 이를 소수의 지원병으로 치부해 버리는 실수를 하게 된다. 하지만 중공군은 이 시점에 이미 40개 사단으로 편성된 30만여명의 병력으로 북한 내에 들어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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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장진호 전투 (빨간색은 중공군의 이동 경로, 파란색은 미군의 이동 경로)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장진호를 조심스럽게 확보한 미 해병대 1사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중공군에게 완전히 포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첫번째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개마고원에 위치한 장진호는 주변이 고원지대로 둘러싸여 있어 대규모 병력이 이동할 수 있는 경로가 제한적이다. 이를 잘 아는 중공군은 야간에만 이동하면서 장진호 주변을 완전히 포위하면서 미군이 걸려들게 함정을 파 놓고 기다렸던 것이다. 중공군의 전략이 제대로 먹혀 들면서 미 해병대 1사단의 예하부대들과 국군 예하 부대들은 하나씩 고립되면서 각개격파 당하기 시작했다.

미 해병대 1사단의 사단장인 스미스는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고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병력들을 하갈우리 방어작전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하갈우리는 첫번째 그림에서 아래쪽에 ‘Hagaru-ri’로 표기된 곳으로 흥남 부두까지 연결된 유일한 길이다. 만일 여기를 확보하지 못하면 2만여명의 미 해병대 1사단은 4배가 넘는 8만명의 중공군에 의해 겹겹이 포위될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중공군뿐만 아니었다. 고원지대인 장진호 지역은 겨울에는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살인적인 혹한이 몰아치는 곳이다. 많은 병사들이 변변찮은 방한 장비도 없이 동사했고 살아남은 병사들도 동상으로 손발을 잃게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다행이 스미스는 호수 양측으로 분산되어 있던 병력을 하갈우리까지 철수하는데 극적으로 성공했다. 중공군 4개 사단과 살인적인 혹한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뤄낸 성과였다. 하갈우리에는 생존한 만여명의 병력과 4300명의 부상자가 집결해 있었다.

미군 지휘부에서는 중장비를 모두 폐기하고 병력을 항공전력으로 출수시키는 작전을 제안했지만 스미스는 그렇게 하려면 공항시설을 마지막까지 지켜야 하는 병력의 목숨과 바꿔야 한다는 것 때문에 불명예스러운 작전이라고 하며 거절한다. 결국 부상병만 항공 후송을 하고 나머지는 흥남으로 철수하게 된다.

이때 스미스는 ‘우리는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방향을 바꿔 공격하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훈시를 남기기도 했다. 결국 미 해병대 1사단은 탈출로를 막아대는 중공군의 방어선을 차례로 격퇴하면서 흥남으로 후퇴가 아닌 진군을 다시 시작했다.

이런 과정에서 미군은 근접항공지원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작전 지역이 미 해군의 함포 사거리 밖에 있었고 또 긴박하게 돌아갔기 때문에 공중을 선회하고 있던 항공기에 의한 근접지원이 절실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초기 접전을 벌였던 소련 항공기들을 물리치고 제공권을 확보한 탓에 원할하게 항공지원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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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장진호에서 중공군을 맞이한 미 해병대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미군은 극한의 추위와 말도 안되는 병력의 중공군을 뚫고서 결국 12월 11일 장진호 철수작전을 무사히 마무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미군측 손실은 2500여명 전사에 219명 실종, 그리고 5000여명 부상이라는 큰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중공군 손실은 더욱더 치명적이어서 약 2만5000여명의 전사자를 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1만250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전해진다. 공격을 담당했던 중공군 8병단은 이 때문에 거의 궤멸적인 피해를 입고 이후 4개월 동안 전선에 투입되지 못한다.

미 해병대 1사단은 장진호에서 명예로운 철수를 성공시키면서 시간을 벌었고 또 중공군을 충분히 소모시켜 동쪽으로 훨씬 더 빨리 진군했던 국군과 미군들이 철수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내면서 많은 병력을 구했다. 그래서인지 장진호 전투를 실패한 전투로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IT업체들의 고난의 행군

짧은 시간에 극적으로 성장하는 IT 업체들이지만 반대로 극적으로 몰락하기도 하는 것이 IT 기업의 속성이다. 극적인 성장 이후에는 어쩔 수 없는 성장통이 뒤따르게 되고 이 성장통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는 진짜 성공으로 이어지는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성장통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던 대표적인 사례로 블랙베리를 꼽을 수 있다. 블랙베리는 한때 최신 트랜드를 이끄는 사람들의 손에 빠지지 않고 들려있던 제품이다. 그 전에 팜 파일럿도 있었지만 스마트폰이라는 카테고리를 완성시킨 장본인은 블랙베리였다. 블랙베리는 특히 전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 대통령이 들고 다니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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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블랙베리의 상징인 쿼티키보드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블랙베리는 초기의 성공과 성장에 따라는 성장통을 극복하지 못했다.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애플 아이폰의 출현을 간과했고 또 스포츠에 투자하는 등 힘도 분산됐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태블릿인 플레이북이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신제품 출시 시기를 놓치는 등 실수를 반복했다. 신규 투자와 관련해 인수합병등에 나섰을 때에는 이미 기운이 많이 빠졌을 때였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믿기 힘들겠지만 IBM은 1911년에 시작한 회사로 이미 100년이 넘은 회사이다. 이런 회사가 아직도 최일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은 바로 여력이 있을 때 기존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략적인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전략적인 투자는 감원과 구조 조정 등 힘든 과정을 야기시키기도 했다. IBM은 이미 2005년에 PC사업부를 레노버에 매각하고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에 집중했다. 당시 IBM은 PC로 인한 성공을 함께 맛보았던 임원들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매각 당시에도 제법 큰 흑자가 나는 사업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BM으로서는 아직 오지 않았던 위기에 대한 절실함이 생각보다 컸던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언론에 많이 나오고 있는 MS의 경우도 비슷하다. 무게 중심을 이미 클라우드로 옮기고 다시 인공지능으로 옮기면서 인텔리전트 클라우드를 이야기하고 있다. 대중적인 인식에는 여전히 윈도우와 오피스를 파는 회사로 기억되고 있지만 구조조정 소식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계속 상승세인 것은 여전히 건실한 현금 흐름과 수익성, 그리고 집중하고 있는 클라우드와 인공지능 분야의 서비스의 질과 양에 있어서도 좋은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보도된 바와 같이 구조 조정을 감행했지만 지난 몇 년의 주식시장이 반응을 보면 극적인 변화가 시장에 반영된 결과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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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마이크로소프트의 최근 5년간의 주가 변화. 30달러에서 시작해서 최근 70달러를 넘어가고 있다 [사진 출처 : 매경DB]
장진호 전투처럼 여력이 있을 때 변화의 시기를 감지하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향해 방향을 잡고 투자를 하며 회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냉철함이야말로 매 시간 변화하고 진화하는 IT기업들에게 요구되는 능력이 아닐까 한다.

단순히 평화를 외친다고 해서 평화가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평화는 그저 의미 없는 한 단어일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영광스러운 평화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김영욱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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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마이크로소프트에서 기술을 전도하는 에반젤리스트로 일하고 있으며 다양한 대형 프로젝트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 및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 DX팀에서 최신 기술을 다루고 있다. 과거 역사속의 전쟁들과 IT기업들의 이야기를 묶은 'War of IT'를 집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