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헬스케어 혁명] 100달러 지놈 시대

언젠가 올줄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올줄이야

  • 입력 : 2017.01.18 04:12:03   수정 : 2017-05-29 13: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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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달러 지놈'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1000달러만으로 한 사람의 유전 정보 전체를 분석하는 것은 과학계의 오랜 숙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류 최초로 한 사람의 유전체를 분석했던 휴먼 지놈 프로젝트는 27억달러나 필요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질병 치료를 위해 유전체 분석을 했던 최초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2011년 그는 10만달러를 들여서 췌장암 치료법을 찾으려 했다.
2014년 미국에서 희소식이 들려왔다. 유전체 분석 기기 제조사 일루미나에서 드디어 1000달러 지놈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업계의 오랜 숙원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불과 3년이 지난 며칠 전 또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일루미나가 새로운 기기를 내어놓으며 머지않아 '100달러 지놈'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100달러 시대'는 서비스 대중화로 이어질 신호탄이다. 이번 뉴스를 접한 업계 관계자는 "이제 초등학교 신체검사에 유전체 검사도 포함되는 것 아니냐"는 농담을 했다. 이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을 정도로 파격적인 선언이었다.

우리가 정말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변화 이면에 흐르는 근본적인 현상이다. 사실 100달러 지놈은 언젠가 반드시 도래할 미래였다. 하지만 우리가 충격을 받은 이유는 그 미래가 이토록 빨리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빨라지고 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저서 '특이점이 온다'에서 기술이 기하급수로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18개월마다 두 배가 된다는 무어의 법칙이나, 무어의 법칙보다 더 빠르게 하락하고 있는 유전체 분석 가격의 추이를 보면 이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렇게 기술이 계속 발전한다면 언젠가 기술 수준이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순간이 온다. 이러한 특이점이 정말로 도래할지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지만, 최근 몇 년간 변화를 보면 적어도 기술의 발전이 우리가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로 빨라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무서운 점은 "과거를 보면 미래를 알 수 있다"는 말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작년에 우리는 불과 몇 달 전의 알파고 기보를 바탕으로 "아직은 인간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잘못 예상했던 적이 있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이미 선형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인간의 예측을 뛰어넘고 있다. 알파고의 충격도 "언젠가 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는 것 아니었던가. 우리는 이 충격을 앞으로 더욱 자주 맞을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회 구조의 변화가 이렇게 폭주하는 기술 발전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로봇, 드론, 유전 정보 분석 등의 새로운 기술은 필연적으로 법률·규제·보안·윤리 등에서 새로운 이슈를 파생시킨다. 이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장기적인 안목과 세심한 준비,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너무 과감한 접근은 기술의 부작용을 초래할 위험이 있지만, 또 너무 보수적인 접근은 우리 사회를 회복 불능의 갈라파고스로 만들 수 있다.

선진국은 기술의 폭발적인 발전에 발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작년 말 오바마 정부가 임기 말임에도 '21세기 의학 법안(21 Century Cure Act)'을 한 달 만에 파격적으로 통과시킨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이 법안은 세밀한 계획하에 약 7조원에 이르는 예산을 향후 5년 동안 유전체 의학, 정밀 의료에 필요한 기초 연구 지원, 규제 혁신, 의료 시스템 개혁을 투입하는 것이 골자다.

이에 비하면 시계가 멈춰버린 혹은 과거로 회귀한 작금의 한국 정치 상황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앞으로 5년 동안 인류가 겪을 변화는 지난 50년간의 변화보다 더 클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격변의 시기에 대비할 기회를 이미 놓치고 있는 것 같다.

[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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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연구소장 다른기사 보기
국내서 손꼽히는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가로 한국에 이 분야를 소개한 장본인이다.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했다. 서울의대 암연구소 연구교수, 스탠퍼드 대학교 방문연구원, KT종합기술원 컨버전스연구소 팀장 등을 거쳐 현재 최윤섭 디지털 헬스케어 연구소 소장 및 성균관대학교 디지털 헬스학과 초빙교수,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의 대표 파트너를 역임하고 있다. 블로그 '최윤섭의 헬스케어 이노베이션'을 운영하고 있다.